온두라스에 '희망의 집'을 짓다
중남미 방문기 2008-07-14 20:58:48
윤나라의 중남미 방문기
   
 
중남미 방문기1 중남미 방문기2 중남미 방문기3 중남미 방문기4 중남미 방문기5 중남미 방문기6

온두라스에서의 두 번째 날, 여전히 지구 반대편의 시차에 완전히 적응되진 않았지만, 맑은 공기 덕분에 방문팀 모두가 피곤을 좀 덜 느끼는 것 같았다.아침에 밖을 나오니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다

이 날 일정은 기아대책기구가 현지에 선교사로 파견한 권혜영 선교사가운영하는 '여리고 학교(ministerio jerico)'와, 그녀가 건설중인 '여리고 재활센터'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짜여 있었다.

'여리고 학교'는 권혜영님이 '베찌'라는 미국인 선교사와 함께 1999년 6월부터 시작한 학교이다. 온두라스에는 남자나 아이들을 위한 재활센터는 있으나 매춘 여성들을 위한 시설은 없었다. 그래서 이곳은 온두라스 국내 유일의 여성들만을 위한 시설이 되어 있었다. '금남의 집'인 것이다.

권혜영님은 온두라스에 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과연 무엇인가를 놓고 고심하던 중 거리의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고,그녀들의 몸과 마음속에 잠재돼 있는 엄청난 상처와 아픔을 보게 되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사고방식으로 가득한 그녀들의 마음 문을 연다는 게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대다수 여성들의 입에서 "나는 쓸모없는 쓰레기, 매춘을 위해 태어났고, 매춘밖에 할 게 없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고,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기막힌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새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는 비일비재해요.새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엄마는 딸 대신 새아버지를 택했어요. 그 아이의 충격이 어떠했겠어요?""또 한 엄마는 남자가 떠난 후 마약에 취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자기 아이의 팔을 커다란 칼로 내리쳐 크게 다치게도 했어요. 하루 종일 거리로 나가야만 하는 여자들이 문을 잠그고 나가버려 집안에 있던 아이들이 불에 타 죽는 일도 허다해요" 권혜영님의 한숨 섞인 이야기다.

여리고 학교는 바로 그 '거리의 여자들'을 위해 시작한 곳이었다.학교에 오면 '공부'도 하지만,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그녀들을 다시 거리로 내몰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어 재봉질도 가르치게 되었다. 재봉질로 만든 침구나 식탁보, 앞치마 같은 것들은 판매하여 나중엔 그녀들이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공부'와 '일' 두 가지를 하다보니, 엄마들이 거의 하루 종일 학교에 있게 되고 아이들은 엄마들이 거리로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방치될 수밖에 없게 되어지금은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다닐 수 있는 '종합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리고 학교만으로는 여의치가 않았다.마약과 매춘은 일단 시작하면 그 중독성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 스스로 헤어 나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마약과 남자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서 가까운 한 그런 것들에게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는 것, 그리고 주변에서 그 어떤 도움을 준다 해도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재활센터'를 건립하는 것이었다.우리는 권혜영님이 '통쾌하게'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시내에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지어지고 있는 센터 건설 현장을 향했다. 한 한국인 독지가가 기증한 10만 달러(약 9,330만원)로 10ha(약 3만평)의 산지를 사들여,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짓고 있는 곳이었다.

차안에서 한참을 맑은 공기와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변엔 집도 보이지 않는 무척 한적한 곳이었다. 푸르고 맑고, 또 평화로워보였다. 웅장해 보이는 대문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건축 중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에 흙벽돌로 세워져 올라가고 있는 회색 건물과총총히 놓여진 흙벽돌과 기와들, 그리고 대패질을 기다리는 목재가 눈에 들어왔다.명절 기간이어서 공사 중인 인부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는 돈이 조금 생기면 이루어지고, 또 기다렸다가 이루어지는 중이라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귀한 뜻으로 한 사람의 여성이 시작해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또 하나의 현장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설명을 듣고 있자니, 시작과 지어나가는 과정이 마치 '깊은산속 옹달샘'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좋은 꿈을 꾸기 시작했고,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기도의 응답처럼 동반자가 나타나고, 마침내 한 사람의 꿈이 어느 순간부터 만인의 꿈이 되어 드디어는 하나하나 이루어져가는 모습!

어느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공간이지만,그 공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공간이라 느끼며 살 수 있는 곳,그 안에서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지고,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꿈이 생겨나는 그런 곳이온두라스에 먼저 지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온두라스는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권혜영님의 존재였다. 이 모든 일들을 여자 혼자의 몸으로 너무나 강단 있게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 특히시원시원하고 큰 웃음소리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정말 통쾌했다. '하하하하' 하고 조금은 사내스러우면서 당당하고 우렁차게 웃는 그 웃음소리가피곤에 지친 일행들에게 청량제가 되어줌은 물론 안 웃을 일도 더 웃게 해주는 묘한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우리 중남미 방문팀에게도 그랬듯이,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곳 사람들에게도 힘과 용기와 격려와 희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안하고 희망 없는 삶 속에서 통쾌하고 호방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네들에게 용기를, 그리고 불안을 없애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실력 있는 간호사로서 전도유망했던 그녀가 자신의 직업을 내던지고스스로 선택한 온두라스에서의 '사역'에 어찌 지치고 힘든 때가 없었을까.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녀가 그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그 큰 웃음에 묻어 날려버림으로써 이겨냈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저 재미있어 따라 웃기만 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웃지 못 할 정도로 힘든 일은 없다."이역만리 온두라스에서 만난 그녀의 웃음소리가 내게 준 작은 교훈이다. - 윤나라의 중남미 방문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글,사진/ 아침지기 윤나라 실장
 
여리고 학교 여리고 재활센터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Tegucigalpa) 풍경. 길가에 심어진 야자나무가 따뜻한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여리고 학교. 기아대책기구의 권혜영 선교사가 거리의 여자들을 위해 세운 학교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오렌지색이 산뜻해 보인다.여리고 학교의 어린이 방. 이곳은 엄마들이 공부하고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실이다. 권혜영선교사(왼쪽)가 안내를 해주고 있다.몇 안되는 의자와 책상이지만,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귀한 공간이다.아가방. 갓난아기들을 안심하고 맡겨놓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아가방에 걸린 아기사진.아이들의 정서와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할 수 있고, 바로 옆에서 씻을 수 있도록 아이들 키에 맞추어 마련해 놓은 세면대도 있었다.권혜영선교사와 베찌선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직접 그려놓은 벽화가 '수준급'이다.학교 벽면은 오직 아이들을 위해 꾸며져 있었다.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 쓴 모습이다.학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권혜영 선교사.브리마(Vlima)와 낸시(Nancy). 엄마와 딸이 함께 매춘 생활을 해오다가 여리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뒤로 두 사람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달콤한 토막잠. 고도원 홍보대사가 피곤했는지, 여리고 학교를 둘러보다가 잠깐 잠이 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여리고 학교의 작업장. 우리가 도착한 날은 온두라스의 명절 기간이어서 학생들이 없었다.그러나 그 곳 학생들의 작업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재봉틀은 맨처음 '낸시'의 요청에 의해서 들여오게 된 것.지금은 이 곳 여리고 학교에서 없어선 안될 귀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대우' 상표가 눈에 띈다.재봉질은 그저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이 작업이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주고 있었다.완제품. 이곳 학생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상품들이다. 침대보와 식탁보, 아이들 이불, 앞치마와 각양 각색의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그맣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가게를 둘러보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꽃과 철조망. 마당은 꽃으로 꾸며져 있지만 울타리는 치안상태가 좋지 않아 높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여리고 학교 여리고 재활센터
도로변 판자집. 테구시갈파(Tegucigalpa)시내를 벗어나 여리고 재활센터를 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길거리 매점(?). 오른쪽 검은 솥에서 옥수수가 익고 있다.옥수수를 사다.'옥수수 파티'. 이동 중간에 옥수수로 간식을 하고 있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정정섭 회장(왼쪽)은 앉은 자리에서 6개의 옥수수를 먹어 동행자들을 놀라게 했다.여리고 센터의 정문.건축중인 여리고 재활센터의 건물.정문에서 꽤 멀리 떨어진 산속에 들어서 지어지고 있다.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방문팀들. 아치형 문을 들어서자 내부가 훤히 보인다.안으로 들어오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 공간이 꽤 넓다.흙벽돌. 근처에서 나는 흙과 소나무 잎을 섞어 만든 후 햇빛에서 몇차례 말리는 작업을 거치면 완성된다. 직접 만들고 있는 기와. 기와도 현장에서 직접 만들고 있다.여리고 재활센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설명중인 권혜영 선교사.그녀의 통쾌한 웃음. 카메라에 그녀의 웃음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도 소리만큼이나 시원시원하다.점심식사. 미리 준비해간 감자, 고구마가 그날의 점심 메뉴였다.그 어느 음식보다 더없이 훌륭한 점심이 되어주었다.평소에도 고구마를 좋아하는 고도원 홍보대사가 노랗게 잘 구워진 고구마 껍질을 열심히 벗기고 있다.오이 무침과 함께. 권혜영 선교사가 직접 만들어 싸가지고 온 한국식 오이무침이 그날의 히트였다. 마지막 국물까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점심을 마치고 정정섭 회장과 고도원 홍보대사가 산길을 걸어내려오며이 곳이 온두라스의 큰 빛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공기 좋고, 물 좋고, 경치도 좋은 이곳에 여러 사람들의 뜻으로 지어지는 '여리고 재활센터'에서 수많은 온두라스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본다.
처음으로 ↑
  1. 오윤석 2008-07-28 22:38:01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