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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베네치아, 총독 전속 주방장의 악명 높은 정원에 들어선 어린 수습생의 얼굴은 긴장과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신세계의 기묘한 식물들이 자라는 그곳에는 주방장만의 맛의 비법인 그것,
화려한 붉은 공 모양에 자극적인 향을 풍기는 러브애플이 있었다. 분명 그 열매의 터진 껍질 틈 사이로는 끈끈한 붉은 독이 뿜어져 나오리라.
17세기 파리, 한 귀족이 궁정의 어릿광대에게 장난 삼아 '폼 다무르'를 던져주었다. 독열매를 받아 든 어릿광대가 기겁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어릿광대는 보란 듯이 그 열매를 먹어 치웠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관상용 식물 '폼 다무르'는 그날부터
일부 호기심 많은 이들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19세기 뉴저지, 한 육군 대령이 토마토를 2천 명의 군중 앞에서
먹겠다고 용감히 선언했다. 마을 의사는 그가 독초인 토마토를 입에 넣는 순간
피를 토하며 죽을 거라 경고했고, 마침내 그가 과즙을 흩뿌리며 토마토를
한입 덥석 베어 물자 관중들 사이에선 실신하는 여성들이 속출했다.
결과는? 대령은 더할 나위 없이 멀쩡한 상태로 손가락 사이의 새콤한
과즙까지 쪽쪽 빨며 맛있게 토마토를 먹어 치웠다.
역사 또는 역사를 각색한 이야기 속에서 토마토는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500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그 화려한 붉은색,
매끄러운 촉감, 풋풋한 향기, 그리고 자극적인 맛으로 악마의 열매란
오해를 받아온 비련의 주인공이었다. 또한 전세계 사람들에게 식용식물로
인정받은 지 겨우 200년 만에 '토마토가 붉게 익을수록 의사의 얼굴은
새파래진다'라는 찬사를 들으며 황금의 사과, 또는 사랑의 사과란
애칭을 갖게 된 반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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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과일이나 채소보다 드라마틱한 사연을 지닌 이 열매가 작년 겨울 꽃마를 찾아왔다. 꾸준히 받아오던 아침편지를 통해 우연히 꽃마를 알게 되고,
건강한 의식주를 지향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으셨다는
그린하우스의 주인장 최의찬님께서 꽃마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최의찬님께서 가장 기쁘고 설레셨다는 2008년 12월 2일, 싱싱한 토마토가
평가상품으로 소개되었던 그날을 지나 꽃마주민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그린하우스가 꽃마에 뿌리를 내린 지도 어느새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꽃마주민은 항상 옳다'라는 신념으로 토마토 그 이상의 마음을 나누셨기에,
꽃마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당연지사, 그 사랑에 힘입어 얼마 전
두 번째 토마토 농장을 마련하셨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강원도 춘천, 번화한 거리를 지나 한적한 소양강을 따라 올라가면
정겨운 옛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조용한 마을이 모습을 보이고,
이곳에 그린하우스의 새로운 터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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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우리를 맞는 건 여기저기서 붕붕 날아다니는 벌들. 군데군데 놓인 네모난 벌집을 들어왔다 나갔다
바쁘게도 움직인다. 최의찬님께는 익숙한 일상이겠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자연수정현장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흠칫 거리기도 여러 번, 당연하겠지만 노란색 토마토 꽃만이 벌들의 목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긴장을 풀었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토마토는 나무라 불러야 할지 줄기라 불러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로 가느다란 나무의 매 단에서 싱그러운 초록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맨 아랫단에는 어른 주먹만한 커다란 열매가 맺혀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데, 토마토는 모종을 심으면 첫 단이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고, 한단 더 자라면 새로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고, 이렇게 성장하면서
수정을 거듭하기에 아래서부터 대-중-소의 크기로 열매가 맺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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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가 맺히기까지 두 달, 그리고 4~5단까지 성장하기 때문에 서너 달이면
수확이 모두 끝나 수명이 다한 나무를 뿌리째 뽑고 새롭게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니
이것이 한 나무가 매년 열매를 맺는 과일과 비교되는 채소의 특징인가 보다.
때문에 작년 겨울부터 꽃마주민들이 맛보았던 일산 농장의 토마토는 수확이 모두 끝나
그 땅이 휴식에 들어갔고, 지금은 바로 여기 춘천 농장에서 재배하는 토마토를
꽃마주민들에게 보낸다고 한다.
농장 방문 당일, 그날 꽃마주민들에게 보낼 토마토 수확을 지켜보았는데, 최의찬님께서
꼭지를 꺾으시는 토마토는 파래도 너무 파랗다. 알고 보니 여름토마토는 겨울토마토보다
무르고 기온이 높아 배송 중에 쉽게 후숙되기 때문에, 70% 정도만 익으면 바로
수확하여 보낸다고 한다. 과연 그래서 하우스 안에서 붉은 토마토를 찾을 수 없었나 보다.
토마토는 유독 온도에 예민한 열매이다.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익는 속도가 배로 빨라지고, 조금만 내려가도 성장이 더디다.
더군다나 온도가 맞지 않으면 시장에 팔지 못하는 울퉁불퉁 못난이 기형 토마토가 된다니
모난 곳 하나 없이 동그랗고 탐스러운 토마토 그 자체가 최의찬님의 정성이었다.
(참고로 온도에 예민한 존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벌들이다.
지금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만 7~8월 무더위가 시작되면
벌집을 툭툭 건드려도 날개 한 장 보여주는 법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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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런 토마토를 만들기 위해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적절한 천적과 끈끈이의 사용이라고 한다. 여느 과일이나 채소보다 껍질이 얇기에
일체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친환경 토마토를 기르려면,
토마토에 꾀는 벌레에는 그 천적으로 대항하고, 날벌레는 끈끈이로 제거한다고 하니,
싱싱한 토마토 한 알에 담긴 수고로움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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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토 농사의 이모저모를 하나하나 설명하시는
최의찬님의 얼굴엔 진지함만이 가득했다. 처음 뵈었을 땐 정말 농사를
짓는 분이 맞을까 의아했을 정도로 정장 차림의 세련된 멋쟁이셨지만,
알면 알수록 토마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참농사꾼이셨다. 숯을
이용한 퇴비를 통해 토마토의 당도를 더 높이고 싶으시단 포부,
더욱 안전한 배송을 위해 새로운 박스를 디자인하셨다는 의욕은
왜 그린하우스의 토마토를 좋아하시는 꽃마주민들이 많은지
대번에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기르는 사람이 행복한 마음으로 토마토를 재배하면
토마토가 한결 맛있어진다는 최의찬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 행복의 이유는 바로 우리 꽃마이며, 꽃마주민들의
사랑이 토마토 맛의 비밀이라 말씀하시는 최의찬님의 겸손은
더욱 인상 깊었다. 꽃마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나누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열린 장터가 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토마토-그 화려한 붉은색이 인간의 무지로 오해 받아온 역사를 지나,
선명한 붉은색에서 건강과 미용의 효과를 찾는 지금, 21세기 춘천,
따스한 붉은색엔 자연과 사람의 교감과 믿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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