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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님을 만난 첫 느낌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는 듯 했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구칠까 싶은, 마치 펄펄 살아있는 '활화산'을
보는 것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팝콘이 톡톡 튀는 것 같은 열정과 힘이 실렸다.

정기간행물 꿈너머꿈 창간호의 <저도 아침편지 가족입니다>
인터뷰 코너에 첫번째 주인공으로 한비야님이 선정된 이유는, 무엇보다 그녀가
'꿈너머꿈'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녀시절부터 남다른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불태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꿈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침편지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 평소에 사진으로 뵙던 모습보다 훨씬 더 예쁘세요. 비결이 있다면요?
"호호호(웃음). 저도 저의 집에 거울이 있죠. 제가 예쁜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하지만 외모도 변하더라고요. 예전의 제 얼굴과 지금의
제 얼굴의 표정을 보면 확실히 달라요. 이유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예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해서 사니 얼마나 행복해요.
외모도 자라나나봐요. 꿈이 자라나는 것처럼요."

아침에 일어나 첫 번째로 읽는 것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라고 하는
한비야님은 사실 처음에는 아침편지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어느날
"너의 책이 아침편지에 실렸으니 한번 읽어봐"라는 절친한 친구의 전화로 처음
아침편지를 접하게 된 후, 바로 가족이 되었다고 한다.

"저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언더그라운드 9시 뉴스'라 부르고 있어요.
TV 9시 뉴스를 통해 그날의 사건사고 등 세상살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접한다면,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그 세상살이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의 메인 뉴스라
할 수 있지요. 매일매일 나의 내면을 촉촉이 적셔 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
핸드폰에 고도원님은 '앵커'로 저장되어 있답니다.하하하."

2005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참혹한 쓰나미 현장. 대규모의 재난현장에서
긴급구호를 하기 위해 한비야님은 그 곳에 있었고, 그 길목에서 고도원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참혹한 현장의 피해 상황을 생생한 글과 사진으로 아침편지 가족들에게
'한비야의 긴급구호'라는 제목으로 전해주기도 했던 특별한 인연의 한비야님.
그런 그녀가'마음의 비타민'아침편지를 그녀만의 언어로 표현해 준
'언더그라운드 9시 뉴스'. 생각지도 못했던 꽤 근사한 비유였다.
아버님이 심어준 꿈의 씨앗
- 한비야님의 꿈을 자라게 해준 '꿈의 씨앗'이 있었나요?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꿈의 씨앗이요? 있었죠. 그것은'세계지도'였습니다.저의 아버지께서
제 마음에 씨앗으로 심어주신 것이 바로'세계지도'였지요. 어릴 때 집안 곳곳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으셨고 "비야야, 인도에 밥풀 묻었다" 또는 "페루가 찢어졌다"
하시면서 자연스레 세계를 이웃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키워주셨습니다. 그것이
걸어서 세계일주를 7년 동안 감행케 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시발점과
원동력이 되었죠."
- 꿈의 씨앗이 자라면서, 한비야님의 꿈도 많이 자라셨을 것 같은데요.
  꿈이 자라나는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처음에는 저 한사람만을 위한 꿈으로 시작했죠.'세계일주'를 하겠노라고...
그 꿈을 어느정도 이루어 가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가 1996년이었는데, 그때
탈레반 정권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시기였고 제가 그 현장에 있었죠. 어느날
그 곳의 한 난민촌을 지나게 되었는데 지뢰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은 한 소녀가
목발을 짚은 채 다가와 저에게 빵을 하나 건네주지 않겠어요? 그 소녀에게는
하루 식사가 될지도 모를 목숨과도 같은 그 귀중한 빵을 말이죠. 처음엔
고사했지만, 제가 먹어주는 것이 소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빵을 눈물로 삼키던 바로 그때, 저에게
또 다른 꿈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꼭 다시 돌아와 내가 너희들을 돌봐줄께"라고요. 그래서 긴급구호활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꿈 너머 꿈은 '국제 난민촌의 촌장!'
- 그 '꿈'을 이룬 지금, 한비야님의 '꿈너머꿈'은 무엇인가요?
"꿈 너머 꿈...조금은 어렵네요. 물론 저에게도 꿈 너머 꿈이 있죠.
긴급구호팀장, 하지만 이것이 저의 마지막 꿈의 종착점은 아니에요. 사실,
아직도 수많은 꿈을 꾸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국제 난민촌의 촌장'이 되고
싶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긴급구호'인데,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난민들이 다음 단계에서 접하는 게 바로 '난민촌'이에요. 거기에서는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총체적인 지원을 하는 거죠.한국에는 아직 국제기구
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긴급구호에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디부터가 재활을 위한 난민촌의 기능인지 분명치 않아요. 외국의
사례는 많지만 우리가 직접 쌓은 경험과 지식을 잘 기록해서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고 싶어요. 이것이 바로 현재 제가 꾸고 있는 '꿈너머꿈'입니다."
- 너무도 씩씩해 보이시는 한비야님이신데요...
  혹시 꿈을 향해전진하다가 좌절의 시간을 경험해 본적이 있나요?
"사실, 난민촌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밑바닥 인생을봐 왔기
때문에 저는 웬만해선 쉽게 좌절하지 않아요. 오히려 좌절의시간이 오면 저는
다시금 일어서는 힘을 얻죠. 그리고 더 큰 희망을 품습니다.지금이 저의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은 전초전이죠. 마치 봄과 같다고나 할까요? 앞으로 50대에
넘어야 할 산, 60대에 넘어야 할 산이 있겠지만 그 어려움을 넘어가는 가운데
어떤 풍경이 펼쳐지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너무나 설레이고
기다려져요."

덧붙여 한비야님은 인생을 바둑판과 같다고 했다.서로 안 만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만나고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과정들이 언젠가는 꼭 필요로
하는 경험이 된다고 말이다.

"저는 모든 사람에겐 자기 손에 주어진 촛불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촛불을 잡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초도 밝히면서 주변 사람의
초에도 불을 붙여주는 인생을 살 것인가. 그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한 사람의 촛불은 희미하지만 많은 사람의 불빛이 모이면
그것이 거대한 화력이 되어 온 세상을 밝게 비쳐주겠죠."

그녀는 오늘도 자신만의 꺼지지 않는 촛불을 밝히며, 또 다른 초에 불을
붙이기 위해 열심히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나의 '꿈너머꿈'은 과연 무엇인지...★
2007/03/20 04:45 2007/03/20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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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대일 2008/05/23 20:38  삭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청주 에서 책읽는 라디오에서 들으면서 책을 구매해서 읽고 있습니다.
    라디오 들으면서 정말 감동 받았는데요. 눈 물이 나올정도로 가슴아픈 현실과
    한비야님의 행군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뭉클해집니다.
    우리나라에 한비야님이 계셔서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 합니다.

    한비야님의 힘찬 행군 응원합니다. 홧팅!!!

  2. 최상 2008/07/16 09:26  삭제

    존경합니다

  3. 서혜원 2008/07/16 12:41  삭제

    저에게 많이 힘을 주신 한비야님
    당신의 책을 통해 많이 배우고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4. 장미 2008/07/18 11:00  삭제

    삶의 의미를 느끼고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한비야님의 선한 생명력에 감동했습니다.매일 저의 일상생활에 감사하고 즐겁게 목표를 향하여 최선을 ,,,가족에게 믿음과 신뢰를 이웃에게 진실한 사랑을 베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그리고 저의 환경과 조건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5. 그린 2009/03/21 16:18  삭제

    한비야님이 쓰신 책들을 보면서 삶의교훈을 많이얻었습니다! 저도 한비야님처럼
    열정적으로 살고싶습니다~

  6. 나미 2009/03/21 23:08  삭제

    저의 우상입니다~~~~

  7. 아가다 2009/04/07 09:04  삭제

    얼마전 친구가 한비야님의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너무 멋지시더군요. 부럽기도 하구요. 정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신분 이세요. 닮고 싶습니다. 우리 아들에게도 이런 멋진 분이 있다고 꼭 소개 시켜주고 싶답니다.

  8. 송 외순 2009/06/06 11:41  삭제

    제 꿈을 한 비야님을 통해 이루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비야님의 꿈 너머 꿈에 제 꿈도 실어 보냄니다
    날마다 꿈을 이루시고 행복 하시길.......

  9. 동굴안에서 2010/09/16 11:02  삭제

    만 밖을 보면 동굴입구 크기만큼만 보이죠~~ 본명이 한인순씨이죠~~

    한비야 개신교 간증기도회 동영상 : http://www.mgoon.com/view.htm?id=1108295

    한비야씨가 소속되어 있던 월드비젼(www.worldvision.or.kr)이라는 NGO는 그 실체가 개신교 계열의 선교단체의 성격이 짙다는 얘기이다.실제 home page를 방문해서 본 결과 선명회어린이합창단( 선명은 아마 통일교 문선명에서 따온 듯)의 활동 근황이 소개되어 있더군요.요즘 들어서 기부,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데,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이렇다니 씁씁합니다.위 blog에서는 (대부분의 독자가 느낄 듯) 한비야씨의 여행기에서 나오는 과대포장이 어느정도이며,그 폐해를 그녀의 책을 읽고 실제 그녀의 route를 담사하는 후배 여행가, 특히 여성 여행가에게 발생하는 불상사들을 언급하고 있다. '과장'이 좀.... (개인적으로) '좀 그렇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워낙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딱히 흠잡기도 그렇고해서 그려려니 했는데, 정말 이런 개XX 같은 것 들... 얼마 전 서점에서 그녀의 "그것은 사랑이었네!"를 훑어 봤는데....정말 나쁜 X이다!! 진짜 지가 하면 모두 로맨스로 둔갑되어 있으니, 새상에 이런 '공주'가 따로 없다. 논리적으로 설명도 되지 않고....의그,의그,의그....불쌍하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여~~



    그녀 이전에 류시화씨와 그녀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찬삼"이라는 여행가가 있단다.



    추가1. 한비야 첫 작품 앞부분에 '비야'라는 이름이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거짓말이란다. 한마디로 웃기는 년이다. '한인순'이 본명이란다. '비야'는 세례명(pia)을 개명한 거란다. 쳐 죽일년이다.(내 곁에도 아내와 누나들이 있지만, 뭐가 진실된 것인지...어디부터가 진실인지?)

    그녀의 자기소개 프로필에 보면 홍익대 영문과를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진 않을까? 우리 나이로 58년 개띠 쉰셋이다. 나이 처먹고 뭐하는 짓인지?이런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 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행동양식이 뭐가 다르단 말이냐??



    글쓴이는 우연한 기회에 2003년 말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짧았던 여행일정은 횟수를 거듭하며 길어졌고, 총 3년의 여행 후에 결국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나라인 콜롬비아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글쓴이의 경우 여행은 우연 혹은 운명 같은 것이었고, 여행을 시작한 계기도 아주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나 여행 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는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 자극받아 여행을 결심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비야”씨나 “류시화”씨 같은 분들의 여행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글쓴이의 경우 한비야라는 여행자에 대해서는 “바람의 딸”이라는 책을 냈다는 정도만 알았고 특별한 관심을 둔 적이 없다. 그러나 여행중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자 “한비야”를 언급하며 단순한 선배여행자가 아닌 삶의 역할모델 혹은 목표와 같이 지나치게 추앙하고 있음을 느끼고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그런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한비야씨의 저서를 읽어본 후, 글쓴이의 경우와 비교해보면서 한비야씨의 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녀의 책만 접한 사람들은 그녀의 여행기 내용을 실제상황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판이 힘들다. 언론에 노출된 스타가 아닌, 배낭여행자 입장에서 보는 “배낭여행자 한비야”씨는 어떤 인물인가? 그리고 한비야씨가 배낭여행계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글쓴이는 이런 부분에 대해 똑같은 배낭여행자 입장에서 한비야씨에 대해 비판해보려고 한다.






    - 한비야씨는 정말로 "걸어서" 지구를 세 바퀴 반이나 돌았을까?






    * 한비야씨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우선, 한비야씨가 본인의 여행기를 출간한 당시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요소를 살펴보자.


    1. 세계일주 배낭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절의 선구적 여행자
    한비야씨의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1996년은 유럽, 동남아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배낭여행의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던 때였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이 1989년이었으니까 해외를 나갈 기회가 없는 일반대중에게는 한비야씨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며, 유럽 이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에 대해서 유명세를 탄 첫 번째 여행자이기 때문에 비교나 비판자체가 불가능했다.


    (대중에 많이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류시화씨나 한비야씨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찬삼”이라는 여행가가 있었다. 1958년에 벌써 세계일주를 했고 아프리카에서 어느 족장의 딸과 혼인할 뻔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1992년 67세의 나이로 실크로드 횡단중 머리를 다쳐 여행을 중단한 후 2003년 운명하셨다. 김찬삼씨의 여행기가 1960~70년대에 알려졌으니 한비야씨는 실질적으로 김찬삼씨를 잇는 여행계의 대중스타가 된다.)


    2. 여자 혼자 배낭여행이라는 희소성과 대담성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여성이 혼자 세계배낭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한비야씨는 이런 부분에서도 한국에서 최초로 알려졌다.


    3. 외국계 회사에서 보장된 앞날을 과감히 포기하고 여행을 떠남
    한비야씨는 버슨-마스텔라라는 다국적 홍보회사의 한국지사에서 3년간 일한 것으로 되어있다. “바람의 딸” 책 내용에 따르면 보장된 앞날을 과감히 포기하고 세계일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났다고 하는데, 대우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경우 예나 지금이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4. 세계일주 배낭여행에 대한 대중의 무지/정보의 부족
    1996년에 세계일주 배낭여행이라면 굉장히 생소한 이야기이다. 지금이야 여행이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비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 대중이 배낭여행이라는 분야를 알 수 없었다.


    5. 한비야의 책을 통한 일반 대중의 대리만족
    2008년의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여행기가 출판되어 있고, 인터넷 블로그에서 수많은 여행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1996년에는 한비야씨의 책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리만족할 수 있는 매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6. 한비야의 여행루트 자체가 일반인에게 하나의 여행모델로써 자리굳힘
    한국최초의 여성 세계배낭여행자로 한비야씨가 자리를 굳힘으로써,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한비야씨의 책을 사서 미리 공부하고 그녀의 루트와 행동을 답습하는 것이 하나의 모델화되었다.






    * “바람의 딸 지구 세바퀴 반”, 지나친 과장 홍보 마케팅



    한비야씨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는 제목을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한비야씨는 도보로 여행한 적은 없다. “육로”로 여행을 했을지는 몰라도. 최근 도보여행가라는 타이틀로 알려진 김남희씨나, 실크로드 도보횡단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씨 같이 실제 걸으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비야씨는 대중이 여행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절에 자신이 걸어서 여행한 것처럼 포장하여 대중을 혼란시켰다. 이것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저명인사들의 학력위조 논란과 비슷하다(실제로 그 당시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학력이나 경력을 과장 혹은 위조하는게 일종의 유행이었다). 50을 경험한 사람이 150, 200을 경험한 것처럼 자신의 커리어를 과장하여 홍보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비야씨가 여행을 했던 것은 사실이므로, 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어떤 여행자가 처음으로 한반도를 일주했다고 선언했고, 언론은 연일 그를 취재하고 대중들은 그의 대담한 여행에 갈채를 보냈다. 그의 책 이름은 “걸어서 일주한 국토삼천리”였는데, 책이름과 매중매체 홍보만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글자 그대로 "걸어서" 여행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 내용에 따르면 그 여행자는 걸어서 여행한 것이 아니라 모든 루트에서 오토바이와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 여행자는 과연 자신이 “걸어서” 한반도를 여행했다고 홍보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그는 이미 책과 강연 등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는데, 이런 식의 과장된 홍보(책 이름이나 내용)를 단순히 그냥 책 제목일 뿐,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씨의 경우는 60세가 넘어 편안한 노후를 포기하고 실크로드 12,000km를 4년 동안 혼자 걸었는데, 한비야씨가 책에서 밝힌 여행루트의 거리가 지구 세 바퀴 반이라고 하니 140,000km(지구 한바퀴는 40,000km)가 되겠다. 사람이 걷는 속도가 보통 시속 4km이니, 한비야씨의 계산법대로 지구를 여행했다고 하면 35,000시간을 걸었다는 셈이다. 이것을 환산하면 무려 4년이다. 먹고 자고 쉬는 시간 빼고 걸은 시간만 4년이라는 말이다. 그럼 12,000km를 4년동안 걸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씨와 비교하면 한비야씨는 최저 40년을 여행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냥 쉽게 책 제목으로 "걸었다"고 뽑아쓰기에는 지나친 과장 홍보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중매체의 선전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세계일주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한비야씨는 이 엄청난 루트를 어떻게 걸어서 여행했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 (비슷한 문제로, “오지여행가”라는 말도 안 되는 타이틀도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비야씨가 여행한 곳 중에서 진정한 의미로 “오지”는 없다고 보는게 맞다. 일반 여행자가 마음 먹으면 다 갈 수 있는 곳들이며, 전기나 육로가 연결되지 않는 곳도 없었다. 여행편의도나 접근성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한비야씨가 진정 “오지여행가”로 다시 태어난 것은 구호활동을 시작한 최근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한비야씨의 책에는 육로로 여행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지만 마케팅시 책 제목이나 대중매체의 홍보에는 항상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했다. 이것은 마치 수능을 50점 맞은 사람이 100점 맞은 것처럼 홍보해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한비야씨와 같은 과장이 아닌, 실제로 걷고 오지를 다니는 여행자가 있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한다면 한비야씨의 "도보여행", "오지여행"과 같은 마케팅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나친 과장 홍보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 도덕성의 문제 - 다른 여행자에게 미칠 파급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썼다.


    한비야씨의 “바람의 딸” 1권을 보면, 이란에서 반정부군 지도자와 사랑을 나누고 목숨 걸고 아프가니스탄 위험지역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일단, 이란을 여행했던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내용의 진실성 여부는 둘째로 하고, 한비야씨의 글을 쓰는 태도는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극단적인 경험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큰 것이든, 작지만 나름의 소중한 추억이든 간에. 모름지기 여행자라면 글을 쓸 때 후배여행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일들은 경고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비야씨는 자신의 여행경험을 “영웅담”으로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에서 목숨과 바꿔 사진 두 장을 찍었을 때, 그녀는 그것이 금지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욕심에 못 이겨서 일을 저질렀으며 그것을 책에 자랑스럽게 적었다. 이란에서 했다는 반군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여행을 시작한 한참 뒤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제일 앞부분에 자극적인 내용을 고의적으로 실었다.


    일반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되는 상황은 여행자 스스로 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위험지구인줄 알면서 들어갔고, 금지된 일임을 알면서 했고, 그것을 대중매체에 공개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여지는 없는지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는게 정상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심한 말로 한비야씨는 “개념이 부족한” 여행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비야씨의 여행소설(!)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꿈을 꾼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한비야씨의 글을 읽고 자극받아 세계일주의 꿈을 키우며 여행준비를 하는데, “한비야 따라하다가 봉변당하는 한국여자들이 적지 않다” 라는 소리를 여행지마다 들을 수 있다. 외국남자와의 금지된 사랑, 위험한 지역에서의 목숨을 건 모험, 오지에 가서 현지인 집에 신세지기 등, 한비야의 글을 읽으면 이런 경험을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한비야씨의 경우는 뒷일을 생각지 않고 자기자랑에 심취했다가 다른 여행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에 다름없다. 한비야씨의 글 많은 곳에서 자기과시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모든 여행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존경받는 여행자라면 겸손하고 진실되어야 하지 않을까?






    * 월드비전과의 석연치 않은 동맹


    몇 년 전부터 한비야씨는 월드비전(순수구호단체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기독교 선교단체)의 긴급구호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월드비전은 한비야씨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긴급구호와 해외아동결연 모금운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비야씨 얼굴만 보고, 한비야씨가 추천하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월드비전에 엄청난 액수를 기부했다. 그 돈이 구호를 표방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기독교 전파에 쓰임을 모른채... 글쓴이는 “월드비전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포스트를 쓰고 나서, 월드비전은 천주교를 배제한 개신교 단체이며 월드비전에 천주교인은 아마도 한비야씨가 유일할 것이라는 어느 네티즌의 글을 접할 수 있었다.


    한비야씨의 종교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한비야 간증”으로 검색하면 한비야씨가 개신교 간증회에 강연 나가서 월드비전에 모금을 호소하는 동영상과 웹문서가 한두 개가 아니다. 한비야씨는 스스로 천주교신자라고 밝히고 있는데, 천주교신자가 개신교 간증회에서 모금운동을 한다는 것은 일반 대중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한비야씨가 월드비전에 입사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천주교신자인 한비야씨가 월드비전의 이미지 메이킹에 일조했다고 본다. 개신교 선교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월드비전은 결코 연 800억이라는 거금을 모금할 수 없었을 테니까...






    - 개신교 간증회에서 월드비전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 천주교인 한비야씨.




    월드비전과 한비야씨의 동맹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비야씨는 과거 본인의 저서 등에서 수차례에 걸쳐 “앞으로 구호사업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비야씨가 유니세프 같은 국제적 기구나 외국의 유수 NGO에서 일하기에는 경력이 부족했을 것이고(한국에서는 선구적인 배낭여행자이지만 외국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는 그저 흔해 빠진 백패커의 한 명일 뿐), 한비야씨의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자기과시를 감안한다면 그런 곳에서 밑바닥 구호활동부터 시작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때마침 중국유학중이던 한비야씨에게 들어온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 제의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한비야씨는 배낭여행자의 상징이며 또한 월드비전의 얼굴이다. 한비야씨를 주축으로 월드비전의 주력사업처럼 광고하는 “해외긴급구호사업”에는 2007년 월드비전의 총수입금 817억중에서 겨우 18억이 사용되었다. 총 예산의 무려 1/40, 규모 있는 긴급구호팀이라고 보기에는 쥐꼬리만 한 예산이다. 또한 월드비전에서 2007년 모금한 결연후원액의 총합은 348억원이지만, 해외사업에 사용한 총액은 겨우 268억이며, 여기에 해외긴급구호사업 18억을 포함해도 모금액의 총합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출처: 월드비전 2007년 사업보고서 참조)


    예산내역의 합계부터 맞지 않는 월드비전의 817억 예산의 A4지 2장짜리 사업보고서를 보니 의혹이 더욱 커진다. 만약, 월드비전에서 기부금의 일부를 유용하거나 선교자금으로 사용했다면? 개신교 선교자금에 쓰이는 줄 모르고 한비야씨만 보고 기부한 많은 사람들이 느낄 배신감은 얼마나 클까?


    한비야씨는 많은 사람들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앞으로 자신의 종교정체성을 포함해 월드비전이 스스로 홈페이지에서 밝히듯 선교단체임을 분명하게 대중에게 알리고 구호사업을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 새로운 여행자의 아이콘을 기다리며


    근본적으로 여지껏 한비야씨에 대한 비판이 없던 이유는 여행, 그것도 세계일주 여행이라는 것을 일반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세계여행에 대한 글을 썼다면 여행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떤 부분이 과장되었는지, 진실성이 부족한지, 도덕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등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판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배낭여행자들의 여행패턴도 다양해져서 한비야씨가 여행했던 루트를 경험한 후 비판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여행자가 대한민국의 인구대비 극소수라는 점에서 일반대중은 아직도 한비야씨의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비야씨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그가 시대의 아이콘인 것은 또한 시대의 불운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좀 더 책임감 있고 겸손한 여행자가 한비야의 자리를 대체했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여행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한비야씨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자의 한 사람으로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다. “더불어숲” 신영복교수님의 깊이와 한비야씨의 대중성을 반쯤 섞고 거기에 후배 여행자에 대한 책임감까지 겸비한 여행자가 한비야씨의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은 정말 많은 것을 얻게 해준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치 인간이 본능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그 중에 언론에 노출되고 책을 쓰는 스타여행자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또한 한 사람의 여행자 입장에서, 새로운 여행자들은 모두 선배여행자 한비야씨의 용기와 모험심은 본받되, 그와 더불어 겸손함과 진지함까지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10. asdfasdf 2010/10/11 18:5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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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asdfasdf 2010/10/11 18:57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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