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에서의 두 번째 날,
여전히 지구 반대편의 시차에 완전히 적응되진 않았지만,
맑은 공기 덕분에 방문팀 모두가 피곤을 좀 덜 느끼는 것 같았다.
아침에 밖을 나오니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다
이 날 일정은 기아대책기구가 현지에 선교사로 파견한 권혜영 선교사가
운영하는 '여리고 학교(ministerio jerico)'와, 그녀가 건설중인
'여리고 재활센터'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짜여 있었다.
'여리고 학교'는 권혜영님이 '베찌'라는 미국인 선교사와 함께
1999년 6월부터 시작한 학교이다. 온두라스에는 남자나 아이들을 위한 재활센터는
있으나 매춘 여성들을 위한 시설은 없었다. 그래서 이곳은 온두라스 국내 유일의
여성들만을 위한 시설이 되어 있었다. '금남의 집'인 것이다.
권혜영님은 온두라스에 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놓고 고심하던 중 거리의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들의 몸과 마음속에 잠재돼 있는 엄청난 상처와 아픔을 보게 되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사고방식으로 가득한 그녀들의
마음 문을 연다는 게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대다수 여성들의 입에서
"나는 쓸모없는 쓰레기, 매춘을 위해 태어났고, 매춘밖에 할 게 없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고,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기막힌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새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는 비일비재해요.
새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엄마는 딸 대신
새아버지를 택했어요. 그 아이의 충격이 어떠했겠어요?"
"또 한 엄마는 남자가 떠난 후 마약에 취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자기 아이의 팔을 커다란 칼로 내리쳐 크게 다치게도 했어요. 하루 종일
거리로 나가야만 하는 여자들이 문을 잠그고 나가버려 집안에 있던
아이들이 불에 타 죽는 일도 허다해요" 권혜영님의 한숨 섞인 이야기다.
여리고 학교는 바로 그 '거리의 여자들'을 위해 시작한 곳이었다.
학교에 오면 '공부'도 하지만,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녀들을 다시 거리로 내몰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어 재봉질도 가르치게
되었다. 재봉질로 만든 침구나 식탁보, 앞치마 같은 것들은 판매하여 나중엔
그녀들이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공부'와 '일' 두 가지를 하다보니, 엄마들이 거의 하루 종일 학교에 있게 되고
아이들은 엄마들이 거리로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방치될 수밖에 없게 되어
지금은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다닐 수 있는 '종합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리고 학교만으로는 여의치가 않았다.
마약과 매춘은 일단 시작하면 그 중독성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
스스로 헤어 나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마약과 남자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서
가까운 한 그런 것들에게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는 것, 그리고 주변에서
그 어떤 도움을 준다 해도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재활센터'를 건립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권혜영님이 '통쾌하게'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시내에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지어지고 있는 센터 건설 현장을 향했다. 한 한국인 독지가가
기증한 10만 달러(약 9,330만원)로 10ha(약 3만평)의 산지를 사들여,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짓고 있는 곳이었다.
차안에서 한참을 맑은 공기와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변엔 집도 보이지 않는 무척 한적한 곳이었다. 푸르고 맑고, 또 평화로워
보였다. 웅장해 보이는 대문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건축 중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에 흙벽돌로 세워져 올라가고 있는 회색 건물과
총총히 놓여진 흙벽돌과 기와들, 그리고 대패질을 기다리는 목재가 눈에 들어왔다.
명절 기간이어서 공사 중인 인부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는 돈이 조금 생기면
이루어지고, 또 기다렸다가 이루어지는 중이라 생각보다는
조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귀한 뜻으로 한 사람의 여성이 시작해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또 하나의 현장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설명을 듣고 있자니, 시작과 지어나가는 과정이
마치 '깊은산속 옹달샘'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좋은 꿈을 꾸기 시작했고,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기도의 응답처럼 동반자가 나타나고, 마침내 한 사람의 꿈이
어느 순간부터 만인의 꿈이 되어 드디어는 하나하나 이루어져가는 모습!
어느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공간이지만,
그 공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공간이라 느끼며 살 수 있는 곳,
그 안에서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지고,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꿈이 생겨나는 그런 곳이
온두라스에 먼저 지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온두라스는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권혜영님의 존재였다. 이 모든 일들을
여자 혼자의 몸으로 너무나 강단 있게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 특히
시원시원하고 큰 웃음소리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정말 통쾌했다.
'하하하하' 하고 조금은 사내스러우면서 당당하고 우렁차게 웃는 그 웃음소리가
피곤에 지친 일행들에게 청량제가 되어줌은 물론 안 웃을 일도
더 웃게 해주는 묘한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중남미 방문팀에게도 그랬듯이,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곳 사람들에게도
힘과 용기와 격려와 희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안하고 희망 없는
삶 속에서 통쾌하고 호방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네들에게 용기를,
그리고 불안을 없애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실력 있는 간호사로서 전도유망했던 그녀가 자신의 직업을 내던지고
스스로 선택한 온두라스에서의 '사역'에 어찌 지치고 힘든 때가 없었을까.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녀가 그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그 큰 웃음에 묻어
날려버림으로써 이겨냈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저 재미있어
따라 웃기만 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웃지 못 할 정도로 힘든 일은 없다."
이역만리 온두라스에서 만난 그녀의 웃음소리가 내게 준 작은 교훈이다.
- 윤나라의 중남미 방문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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