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신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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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으로 가는 길.
땅의 호흡을 따라 바람의 흐름을 따라
흙먼지를 자옥하게 일으키며 순례자의 행렬이 되어 나아간다.
어느 때는, 차는 보이지 않고 먼지만 남곤 하였다.
그마저도 안개처럼 이내 흩어져버리고...





구름 한 점 피어 오른다.
그리운 얼굴과 미루고 온 일들
일었다가 스러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일어나더니
...
이제 구름조차 없다.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먼 산에 불이 났나보다.
물이 없는 고원에서 불을 끌 방도가 없다.
하늘에서 비 내릴 때까지는...





빈들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풍경을 아름답게 바꾸어 놓고 있다. 초원은 빈 화선지,
그곳에 구름이 시를 쓰기도 하고 말(馬)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초원길에서 만나는 도시가 낯설다.
초원의 아이들은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기숙사, 주유소, 가게 등도 그곳에 있다.
서부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어 금방이라도 휘파람 소리와 함께
말 탄 총잡이가 먼지를 일으키며 골목 어귀에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다.






마침내 헨티에 왔다.
열두 시간의 대장정 끝에 캠프에 도착하였다.
문명으로부터 멀어지고 멀어진 이후
자연의 깊은 숨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곳에서 살았다.





초원에는 화장실이 없다.
짐승이 죽은 자리에서 꽃은 더욱 곱게 피어나고
우리도 똥밭에서 밥을 먹었다.
몽골고원은 그런 곳이다, 생명의 순환이 눈에 보이는 곳.





말을 사랑한 사람들.
그들에게 말(馬)은 생활의 일부라기보다 몸의 일부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뗄레야 뗄 수 없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사람들,
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생을 마치는 것이 유목민의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안장 위가 그들의 삶의 터전인 셈이다.





하늘이 탄다. 초원이 탄다.
날마다 이 가슴에 불 지르는 화부는 누구인가.
초원에 밋밋하게 저물어가는 하루란 없다.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듯이 설렘 없는 노을은 없다는...





우리는 달렸다.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산을 올랐고, 초원을 가로 질렀으며, 강을 건너고
늪을 지났다.





달리는 동안 행복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 두려웠고
그러나 이내 황홀했다. 먼지 속에서 내가 부서지고 이윽고 아예 없어졌다.
거친 숨소리뿐 바람 속에 떠도는 점이 되었다.
말도 나도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하나가 되었다.





구름이 있을 때 햇빛이 잘 보이듯
초원에 있을 때 사람이 더 잘 보였다.
도시에 있을 때처럼 지위나 부에 사람이 가려지는
그러한 일은 적어도 없는 것 같았다.





무더위가 어찌나 심한지
잠도 서서 잔다는 말이 나무그늘에서 쉬다 말고 나뒹군다.
개도 혀를 내민 채 헐떡이고 있고
그 모습을 보고도 사람도 웃지 않는다.





오논강 가는 길.
오후 일과가 끝나면 오논강으로 갔다.
땀을 씻고 돌아오는 길, 언덕을 넘다보면 어느새 등에 땀이 흘렀다.
씻어도 씻어도 도로 땀은 흐르고...
우리는 그 언덕을 시지프스의 언덕이라 불렀다.





씻기는 것은 땀뿐 아니었다.
땀에 전 몸을 물에 담그고 있으면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나가고
온갖 시름도 씻겼다. 처져있던 몸과 마음은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섰다.
얼마 만에 보는 맛이던가, 냇가에서 미역 감던 일이.





칭기즈칸이 출정하던 곳.
푸른군대, 막강불패의 칭기즈칸 군대가 이곳에서 출발하여
초원 밖의 세상으로 나아갔다.
누구도 가보지 않았지만 그들의 가슴은 바깥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었다. 그들은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몽골기병처럼 소리쳐라.
그들 군대는 한 사람의 병사가 4~5마리의 말을 몰며
서서 활을 쏘았고 그리고 쉬지 않고 달렸다.
적이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들이닥치고 누군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이미 빠져나와버렸다. 그리고 늘 똑같이 외쳤다.
"항복하라. 그러면 살 것이고 저항하면 끝까지 쫓아가 죽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두려워 모습만 보고도 엎드렸고 소리만 들어도 손을 들었다.





외딴집.
그들은 홀로 산다.
수십 킬로 떨어진 곳에 이웃이 있지만 언제 떠나갈지 누구도 모른다.
손님을 극진히 우대하는 그들의 전통은 이웃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초원위의 문명.
문명이 낯설게 보이는 곳,
초원에서는 전화도 소용없고 온갖 전자제품도 쓸모가 없다.
자동차가 있다한들 고장이라도 나면 어찌할 것인가.
드넓은 초원에 서서 어디엔가 갇혔다는 절망감이 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는 도무지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들쥐.
초원은 그들 세상이다.
들쥐들이 파놓은 땅굴이 수없이 많아 말들이 달리다가
발을 헛디뎌 뒤뚱대는 일이 허다하다.
유럽에 흑사병을 옮겼을 것이라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바람의 꽃, 야생화.
초원은 꽃밭이다.
한결같이 작고 가녀린 꽃망울을 지닌 야생화들
향기가 어찌나 그윽한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체육대회.
소풍가던 날,
숲 속 마라톤, 제기차기, 이인삼각경기 그리고 줄다리기를 하였다.
완벽한 힘의 균형, 줄다리기 결승전은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늘로 난 천창(天窓).
게르에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곳으로 그들의 신이 드나들고 밤이면 사람이 별을 보며 날씨를 점친다.
땅에는 한곳에 뿌리 내리지 않지만 대신에 하늘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유목민이다.





소똥 줍는 아가씨들.
한여름에도 밤이면 추워서 불을 피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물며 영하40도까지 내려가는 긴 겨울에라야...
게르에서 피우는 불의 연료가 가축의 똥이다.





아침이 왔다.
초원의 아침은 축복의 시간이다.
한낮처럼 무덥고 건조하기만하다면 생물이 살아가지 못하고
곧 사막이 되어버릴 것이다.
새벽에 내리는 하늘의 축복, 초원은 이슬바다가 되고
초원은 작은 생물들의 질주로 가득하다.





다시 저녁이 되었다.
초원의 하늘은 아름답다.
특히 해 질 무렵의 하늘은 장관을 이룬다.
몽골고원이 수많은 호수, 침엽수림, 만년설의 산악지대 그리고
사막지대로 둘려 쌓여있어 기온의 변화가 심한 저녁 무렵이 되면
그들, 강한 기상세력들이 어우러져 색의 잔치를 벌인다.





연 날리다.
하늘을 나는 연을 보면 행복해진다.
연 날리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있어야 연을 날릴 수 있듯이 고난의 바람이 불 때일수록
꿈을 꾸어야할 때이다. 고난의 때가 아니면 누가 꿈꾸겠는가.
꿈꾸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꿈너머꿈을 꾸는 사람은 위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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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순선 2009/02/04 02:51  삭제

    정말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그속의 미적인 감수성을 뽑아내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2. 세리 2009/02/04 21:07  삭제

    그야말로 꿈 너머 꿈을 꾸신분들의 생생한 체험장이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하신분들 부렵습니다. 고도원 대장님 정말 멋진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시는 그 배려와 희생과 사랑의 힘은 꿈너머꿈의 위대한힘 인것 같습니다.고맙습니다.

  3. 구름 2009/02/28 00:40  삭제

    글방에서 본 사진들인데 새삼 가슴 뭉클합니다.
    그윽한 야생화 향기에 숨 막혀 죽어버리면 어떨까
    불타는 노을에 함께 불 붙어버리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잠시 행복해집니다.
    감사합니다.

  4. 김명랑 2009/05/19 00:43  삭제

    늘 가슴으로만 읽고 가슴으로느끼는 저곳을 언제쯤한번 다녀올까 싶어서 간분들이 대단해보이고 부럽습니다
    사진은 왜 그리도 촉촉하게 찍으셨는지 역시 달라도 너무나 다른 곳이 이곳입니다...늘 가슴이 팍팍하거나 건조해져오면 이곳메일에 목말라 이늦은 밤에도 잠을못이루고 광활한 대지를 달렸을 님들을 생각하며 메일을보고또보면서 그 몽골의 아침대지위에 내려앉은 이슬처럼 가슴이 녹아드는걸 느끼며 위안을 삼아 봅니다 지금은 게으른 참여자이지만 언젠가 저도 님들과 함께 떠날날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볼꺼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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